12가지 보석을 1년의 열두달과 견주어 그 속에서 자기가 탄생한 달에 해당하는 보석으로 반지, 팔찌, 목걸이 등 장식용품을 만들어 가지는 습관인데, 그 보석을 탄생석이라고 합니다.
이 풍습은 폴란드와 중부 유럽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시대와 민족에 따라 그 달의 보석을 선택하는 방법은 꼭 같지는 않으며 특히 성서에 나와 있는 보석은 색깔을 주로 하는 것이어서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지 않고 진주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1912년에, 영국에서는 1937년에 귀금속 취급상들이 각각 새로운 탄생석을 선정했고, 그것이 현재의 탄생석의 기준이 되어 있으나 프랑스와 기타 나라에서는 특별히 선정해 놓은 탄생석은 따로 없습니다.

탄생석은 인류 초기에 마귀를 쫓는 호신부나 상징적인 최고의 의미로서 신이 내린 절대적인 신표로 귀히 여겨져 왔다. 몸에 지녀 행운을 깃들게 한다는 의미로 각자의 운명을 향상시키고, 또 구하기 힘든 보석원석을 몸에 지님으로써 신분을 높이는 것과의 교감으로서 그 효력을 맛보았다고 한다. 차츰 시간이 갈수록 일반 대중적인 종교적 의미로는 그 의미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물질문명과 과학, 의학의 새로운 문화는 이러한 풍습들을 없어지게 만들었다. 또 워낙 귀하고 값이 비싸 행운이 찾아온다는 정도의 징크스만 현재 남아 있을 뿐이다. 미국이나 그밖의 유럽을 모방해서 우리나라에도 탄생석이 정착했다.


가넷이란 명칭은 씨앗을 뜻하는 라틴어의 그라나타스(Granatas)에서 유래합니다.
돌속에서 씨앗처럼 박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부족들간에 전쟁을 할 때 총알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때문인지 십자군 원정때는 병사를 지켜 주는 돌로 인식되었고, 왕권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왕관제작에 많이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영국 빅토리아 왕조에서는 이것을 파이로프라 부르면서 귀중시 했는데 이는 ‘불’이라는 뜻의 영어 파이로스(Pyros)에서 나온 것입니다.


2월의 탄생석인 에메시스트는 수정중에서도 가장 가치있는 변종입니다. 자색은 예부터 동서양에서 귀한 색으로 여겨졌지요. 자색 염료는 퍼플러라는 조개에서 채취하는데 아주 희귀해서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면 자색의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메지스트의 어원인 희랍어의 아메드스토스(Amethustos)는 “취하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어서 고대 사람들은 자수정을 몸에 갖고 있으면 만취하는 법이 없으며 오히려 술독을 풀어준다고 믿었습니다.
아메지스트는 사업가들에게 통찰력을 주며, 적으로부터 군인들을 보호하고 전염병과 사고를 막아주며 직감력이 생기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3월의 탄생석인 아쿠아마린은 바닷물을 연상시키는 상쾌한 청점감이 생명입니다.
“아쿠아마린”이라는 이름 자체가 색상을 나타내는데 뜻은 “바닷물”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 보석은 바닷물 깊은 곳에서 해변가로 올라와 보석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는 신비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극도로 높은 경도(Hardness)는 다이아몬드의 특성중 하나로 “정복할 수 없음”이란 뜻을 지닌 이름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경도 10의 단단함과 특유의 광채로 사람들은 다이아몬드를 힘과 순수함의 상징으로 여겨왔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부유한 가정에서는 친척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약혼식을 올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때 약혼자로써 다이아몬드 반지를 서로 끼워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이아몬드를 지혜와 용기, 미와 부의 상징으로 또한, 두 사람을 결합시키는 사랑의 호신부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월의 탄생석인 에메랄드는 고대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이아몬드보다 휠씬 더 귀한 보석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한 전통이 남아서인지 유럽에서는 지금까지도 질 좋은 에메랄드를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게 여겨,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기원전 4천녕경 당시의 대체국이던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서 “비너스에게 바치는 보석”이라 불리며 시장에서 거래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살아 숨쉬는 패류에서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보석” 진주는 이슬방울처럼 영롱한 신비스러운 색채로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이스인들은 진주가 바다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바다 아이” 라는 뜻인 ‘마카리타“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전 2천년경 조정에 바쳐지는 공물로 진주가 쓰였으며 당대에는 진주를 관리하는 주관이라는 관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가장 인기있는 보석으로 시민들 사이에서 진주 수집 붐이 일어나 침대에서 진주가 반짝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루비는 7월의 탄생석으로 끝없이 타오르는 불멸의 불꽃같은 매혹적인 광채로 유색보석의 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성서의 욥기에 의하며 “지혜의 가치는 루비보다 뛰어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루비는 그때부터 이미 최고의 보석으로 인정 받았던 것입니다. 루비는 대영제국의 영예로운 왕의 대관식에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성 조지의 십자가를 새긴 커다난 스텝 컷의 루비가 26개의 다이아몬드에 둘러쌓여 세트된 대관식의 순금반지는 대영제국의 영광을 상징 한다고 합니다.


연녹색의 페리도트는 고대인들에 의해 “태양의 보석”으로 불리워지며, 수 천년동안 가치있게 여겨져 왔습니다. B.C 1500년에 이집트 왕들은 페리도트를 채광하기 위하여 “뱀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사가 가득한 자바가드 섬으로 원정대를 보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집트인들 조차 토파즈와 혼동할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해서 페리도트의 성격을 명확하게 구분짓기란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보석 연구가들도 색깔만으로 구분한다고 하는데, 황색을 크리소라이트, 황록색을 오리번이라고 합니다.


9월의 드높은 하늘을 머금은 듯한 가을의 보석 사파이어는 진실과 불변의 상징으로 오랜 세월 만인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사파이어란 말은 아라비아해의 “사파린”이란 섬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섬을 둘러싼 바다의 물빛과 하늘의 푸르름은 확실히 사파이어에 어울리는 색이라 할 만하죠. 사파이어는 덕망과 성실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겨져 12세기 이후 가톨릭의 추기경은 모두 오른손에 사파이어 반지를 끼고 다녔습니다. 또한 히브리인들은 십계명을 새긴 돌이 사파이어라고 믿었으며 기독교에서는 성(聖)바울을 상징하는 돌이기도 합니다. 성스러운 돌 사파이어는 왕권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10월의 탄생석인 오팔은 수세기 동안 매우 가치있게 여겨졌던 보석으로 사실상 이름 자체가 “귀중한 돌”을 의미합니다. 오팔을 천천히 둘러보면 방향에 따라 백색, 황색, 적색, 녹색 등 각기 다른 색깔로 변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를 유색효과라고 합니다. 오팔이 지닌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오팔을 보석으로 불리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유색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보석이 결정 형태를 이루어 성장하는데 비해 오팔은 마치 젤 리가 굳어져가는 것처럼 이산화규소가 부정형으로 응고하여 완성됩니다.


토파즈란 말의 어원인 “토파지오스”는 “추구한다, 찾는다” 라는 뜻의 희랍어에서 유래합니다. 이 말은 토파즈를 산출하는 홍해의 어느 섬이 짙은 안개에 쌓여있어 항해자에게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돌을 많이 산출하는 홍해의 사펜트 섬 일대는 이집트왕의 명령으로 삼엄하게 관리하고 접근하는 자는 죽이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는 고대인들이 이 돌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게하는 예지입니다. 토파즈는 투명한 황색이 대표적이지만 밝은 청색, 무색, 담록색, 담갈색, 핑크색, 적색등 다양한 색상이 있습니다. 그중 최고로 인정받는 것은 약간 붉은 기운을 띠는 따뜻한 황금색입니다.


터키석은 인류가 보석으로 몸을 아름답게 꾸미기 시작했을 때부터 즐겨 사용한 보석이었으며 페르시아, 잉카, 아즈텍, 이집트 등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폭넓게 쓰여졌습니다. 1900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여왕의 미이라에서는 황금띠 위에 거대한 터키석을 박은 4개의 팔찌가 발견되었는데 자그마치 7천5백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땅속에 묻혀 있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터키석은 구리가 많이 포함되어 있을수록 청색을 띠는데, 청색을 많이 띠는 것 일수록 가치가 높습니다. 사실 터기에서는 전혀 산출되지 않는 돌에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예부터 페르시아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가 이 돌의 대산지이며, 언제나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