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200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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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러 다이아몬드 인기 헐리우드 효과가 한 몫

 17세기 태양왕 루이 14세의 왕관에는 핑크빛 다이아몬드 “호텐시아(Hotensia)”가 빛나고 있었고, 20세기 비극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깊은 바다에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블루호프(Blue Hope) 다이아몬드의 신비가 있었다. 예로부터 컬러 다이아몬드는 그 희소성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들의 특별한 신분을 상징하는 장식물로 애용되어 왔다.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는 오래 전부터 왕족, 귀족, 황제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의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낮은 수요는 1987년 4월 28일을 기점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바로 이 날 ‘핸콕 레드 다이아몬드’라고 불리우는 0.95캐럿의 퍼플리쉬 레드 다이아몬드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8만 달러에 팔려 캐럿당 가격 92만5천3백15 달러로 보석 경매 사상 캐럿당 최고가 신기록을 경신했다.

크리스티의 주얼리 담당자 프랑소와 큐리엘은 “이 날부터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가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핸콕 레드 다이아몬드의 판매 소식이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에 대한 흥미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되기는 했지만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 시장은 이와 별도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걸쳐 부유한 중동의 기업가들과 딜러들로 구성된 견고한 수요층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들의 선호품은 전통적인 D 컬러, 플로리스(내포물이나 흠이 전혀 없는) 다이아몬드에서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로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1985년 호주 아가일 광산에서의 채굴이 시작되고 아가일 다이아몬드 사(社)와 리오 틴토 사(社)가 대규모 마케팅을 시작하자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의 높아진 수요는 급락했으며 이 때부터 고가의 수퍼 시장에서만 거래되던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는 좀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주얼리 디자인에 사용되는 등 그 영역이 확대되었다.
지난 해,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앤트워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아서 랭거맨은 35년 간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 딜러로 활동해 왔다. 그는 최근 일어난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의 부활에는 희소성, 광고, 소비자들의 감정 변화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랭거맨은 최근 고객들이 뭔가 특별하고 색다른 것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밴 애플렉, 데이빗 베컴, 코비 브라이언 등의 유명인들이 거대한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면서 일어난 이른바 ‘헐리우드 효과’가 수요 증가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 컬러 다이아몬드의 특별한 가치는 헐리우드의 스타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누구보다도 특별하게 보여지고 싶은 그들이 선택하는 컬러 다이아몬드 주얼리는 핑크, 블루, 오렌지, 그린, 옐로우 등의 팬시 컬러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당시의 할베리의 손가락에는 무려 300만 달러(약 36억원)의 호박빛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또한 최근에 헤어진 제니퍼 로페즈는 전 애인 벤 에플렉에게 250만달러(약 30억원)에 이르는 핑크 다이아몬드 약혼 반지를 돌려주어야만 했는데,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 해리 윈스턴의 6.1캐럿짜리인 그 반지는 ‘제니퍼 커플의 제니퍼 반지’로 연예계 참새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기도 했다.

/ Rapaport News